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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국가대표’가 못다 한 이야기

작성일 2021-08-31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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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KBS 1TV에서 방송된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편이 지금까지 화제다. 박세리·남현희·김연경·김온아·지소연·정유인 등 전·현직 여성 스포츠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국가대표’는 여성 희극인과 여배우 윤여정에 이은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방송 후 호평에 대한 소감과 방송에서 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을 것 같아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편을 연출한 이은규 PD를 지난 28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편이 방송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화제입니다. 연출 PD로서 흐뭇함이나 보람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굉장히 보람 있고요.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는 기록할만한 서사를 지닌 여성의 발자취를 KBS 아카이브 과거 영상과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담아낸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여성 희극인, 여배우 윤여정 그리고 여성 국가대표 총 세 번째 다큐인데요. 시리즈 작업의 취지를 잘 공감해주시고 의미 있다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더욱 감사해요.”

반응이 좋은 이유가 뭘까요?

“많은 분이 기다렸던 이야기 같아요. 삶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지점들에 대한 문제의식인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다뤄지지 못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저희가 좀 더 선명하게 다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고 반가워하지 않으셨나란 생각이 드네요.”

이 프로그램이 올 3월에 기획된 거 같더라고요. 3월엔 도쿄올림픽 취소 혹은 재연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시점은 아니었을 때인데 불안하진 않으셨는지

“올림픽과 상관없이 스포츠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림픽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8월에 방송할 계획으로 준비했고요. 다행히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최초로 50%에 달하는 여성 선수가 참여하는 성평등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의 활약이 남달랐고 다양한 이슈들이 나오면서 3월 기획 당시보다 더 풍성해진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흑백과 컬러화면을 교차했는데 그렇게 편집한 의도는?

"작년 6월 <다큐 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때도 사용했던 표현방식으로, 시리즈로서 연속성을 가져가고 싶어서 반복하였는데요. 김연경 선수 인터뷰에서 과거 프로리그 데뷔 초기 여자배구에 대한 지원과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증언할 때는 흑백으로, 해외 진출 이후 현재까지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시기는 컬러로 표현하였습니다.

단순히 어려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나온 하소연으로 비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때문에 흑백 화면을 통해서 좀 더 카리스마 있고 당당하고 멋진 이미지를 가져가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구분하여 성장담을 더 잘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저희의 표현 의도였습니다.”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의 이야기로 성차별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 인터뷰이 선정 시 고려한 점은?

“‘여성 아카이브x인터뷰 다큐멘터리 시리즈’라고 저희가 명명하고 있는데요. 이를 단순히 여성차별 한마디로 압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안에는 도전, 좌절, 성장,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향한 응원 등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이 부분을 저희 카메라 앞에서 말씀해 줄 수 있는 분들 섭외하는 게 제일 중요했고요.

KBS 아카이브 영상이 충분히 있고,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성장스토리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업계에 대한 책임감으로 발언해줄 수 있는 분을 섭외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20세기 여성 스포츠 스타의 기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박세리 선수와 최근 <노는언니> 예능에서 함께 활약하고 있는 남현희, 김온아, 정유인 선수 그리고 21세기 여성 프로리그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 지소연 선수. 이렇게 섭외하여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도쿄올림픽에서 배출된 스타 선수들이 있습니다. 함께 담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선수가 있나요?

“저희는 올림픽을 메인으로 가져갔던 게 아니어서 여성과 스포츠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 분이 먼저였어요. 그래서 이제 막 올림픽에서 활약하고 있는, 새로 시작하는 선수들보다는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많은 경험을 하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섭외했습니다.”

맨 처음 김연경 선수를 내세운 이유?

“방송 시점이, 아무래도 2020 도쿄올림픽이 폐막한 그 주었고요. 올림픽 열기가 식기 전에 저희가 준비한 방송을 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도쿄올림픽에서 마지막 날까지 맹활약했던 여자배구 주장 김연경 선수를 맨 처음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선수들 인터뷰할 때 어떠셨는지

“자신의 업계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던 분들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셀러브리티와는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발언을 한다든지, 자기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깊이가 깊고 단단하다는 인식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스포츠에서 성차별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스포츠와 여성에 대한 담론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단순하게 딱 하나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요. 저희 방송에서는 다양한 담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성적 대상화하는 중계와 언론 보도, 부족한 지원과 처우, 유별나게 다른 경기복 규정, 지도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현실, 상금과 연봉 차이 등 다양한 이슈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마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점들은 다른 거 같아요. 저희 제작진을 비롯해 인터뷰한 선수들도 모두 정답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여성 선수들이 스스로 일궈낸 성과에 비해 보상이 비례하고 있는가? 그 속도가 과거 편견에 갇혀 너무 느린 것은 아닌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가 받아서 더 다양한 다음 논의들로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까요?

“스포츠와 여성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고 거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을 봤을 때, 예를 들어 BBC의 경우에는 축구의 종주국이긴 하지만 여성 축구 리그 클럽을 50년 동안이나 금지했던 과오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반성 차원이라고 할까요. 시장 논리에 의해 여성 리그와 남성 리그의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미디어 노출과 정책적인 지원 등 리그 자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장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풀기 어려운 문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노력들이 있는 거 같아요.“

스포츠계 여성 지도자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으셨던데

“지도자도 선수도 실력이 가장 중요하죠. 특히 성적으로 평가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는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지도가 적합한지에 대해서 공정한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올림픽 여자 농구의 전주원 감독님도 ‘이게 여자 감독이라 힘든 것이 아니라 감독이라 힘든, 그리고 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여자 감독의 실패가 아니라 한 개인의 문제로 봐줘야 된다’라는 말씀하셨잖아요. 이런 말씀이 많이 공감되더라고요. 남성 감독은 워낙 그 수가 많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디폴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면서, 여성 감독은 그 숫자가 적고 과대 대표 된다는 개념이 있어서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등한 기준과 평가의 잣대로 실력만 본다면, 훨씬 다양한 여성 감독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방송에서 ‘미녀군단’ 등의 발언도 자주 나옵니다. 보편적인 성인식의 문제일까요?

“저희 다큐에서 나왔지만, 선수에 앞서 여성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입니다. 또한 남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이란 어떤 수식어들이요. 선수라면 누구라도 실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실력으로 주목받기를 바랍니다.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외모 평가라고 하더라도 그게 운동선수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발언할 때 조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과거에는 무비판적으로 사용했던 수식어구들도 최근엔 많은 언론 방송들이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부분에 여자 선수가 종목별로 언제 금메달 땄는지 나오는데?

“감상평에도 많이 남겨주셨는데요. 최초의 기록을 세운 여성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영상구성이었습니다. 저희 다큐 시리즈가 주목한 것은 차별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이 규정 지은 한계를 용감하고 멋있게 뛰어넘는 개인들에 대한 성장담이거든요. 마지막 장면 역시 그런 개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오마주로 표현한 영상이었습니다.”

여자 선수들이 메달을 딴 시기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아서 놀랍던데요

“우리가 대한민국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게 해방 이후, 1948년 런던올림픽 때 처음 참가했어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여자배구가 최초 구기 종목 메달을 따고, 1984년 LA 올림픽에서 최초 여성 금메달리스트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여성이 운동에 참여한다는 인식이 과거에는 더 좀 더 장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도 취재하면서 놀랐고, 이만큼 짧은 시간 동안 그래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제작하며 느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 자막을 통해서 말했던 거로 생각하는데요. 과거 여성이 몸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은 공고했고, 신체적 차이가 대우의 차별로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겪게 되지요. 1896년 제1회 올림픽에선 여성 선수가 0명이었고, 125년이 흘러 2020 도쿄올림픽에서야 절반에 다다랐다는 사실. 그리고 긴 역사 동안 좌절하지 않고 한계를 극복하고 성취한 여성 선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저희 방송의 핵심입니다. 한편 동등 선수로, 우리가 응원하고 지원하고 성장할 다음 세대에 기대를 품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작과정에서 어려웠던 점?

“아카이브와 인터뷰가 메인인 방송이라 인터뷰를 사전에 준비해서 진행하고, 거기에 맞춰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과거 영상 아카이브 찾는 작업에 또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그런데 스포츠 경기나 다큐멘터리 양이 방대해 그런 것들을 찾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취재했지만 방송에 담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요?

“내부 과거 영상 중 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해서 운동선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정규 방송으로 만들었던 게 있어요. 그걸 보면 여성 선수를 비추는 미디어랑 남성 선수를 비추는 미디어의 차이가 분명하더라고요. 남성 선수의 경우 웃통을 벗고 땀을 흘리면서 격렬하게 훈련하는 장면, 아니면 용맹한 호랑이 등의 이미지랑 같이 나왔는데, 여성 선수들은 수를 놓거나 산책하며 호숫가에서 시를 읽는 장면들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인식 자체가 과거에 좀더 고정되었고 그 고정된 인식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장면들을 좀 넣고 싶었는데 못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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