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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여자들의 이야기 [미쓰백]

작성일 2020-12-22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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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백>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대가 좋아서, 노래가 하고 싶어서 용기 낸 자들이 다시 조명 안으로 담대하게 걸어 들어간다.

 

무대 위의 아이돌은 빛난다. 가벼운 감탄사로 표현하기 힘든 그 거대한 빛은 보는 이의 눈과 귀뿐만이 아닌 마음마저 빼앗는다. 한번 넘어간 주도권은 마음의 주인이 선보이는 아름다운 노래와 춤은 물론 그 인물까지 개인의 삶 안으로 기꺼이 들여놓게 만든다. 국적과 인종, 남녀노소를 불문한 아이돌 팬들이 마치 짠 것처럼 “그들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 말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자본과 노동이 집약된 먹이사슬의 극단에서, 아이돌은 자신의 삶이 가장 순수한 생명력으로 넘치는 시기를 바쳐 꿈과 환상을 노래한다.

 

아이돌이 팬의 삶만 바꿔놓는 건 아니다. 아이돌은 아이돌의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실제로 아이돌 무대가 발하는 빛에 가장 눈이 멀어 있는 건 다름 아닌 아이돌 자신일 가능성이 크다. 조상님 취급을 받는 10년 차 이상의 중견 아이돌도, 엊그제 막 데뷔한 햇병아리 아이돌도 입을 모아 말한다. 노래가, 무대가 하고 싶어요. 아이돌의 삶이 절대 녹록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도 그렇다. 짧으면 수개월, 운이 나쁘면 십 년 가까운 연습생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데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그렇게 버티고 버텨 데뷔해도 성공률이 1퍼센트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전부 안다. 그뿐인가. 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과 사고들로 팀이 공중 분해되고, 악성 루머에 휘말리고, 그로 인해 더 이상의 연예 활동이 불가능해지거나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상황에 놓이는 선배와 동료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아이돌은 연애 안 해요”나 “대표님이 1위 하면 휴대 전화 돌려주신댔어요” 같은, 인간의 존엄이 일부 상실된 환경을 유머로 승화해야 하는 숙명까지도 이들은 묵묵히 받아들인다. 정말 그렇게 살든, 그런 삶을 완벽하게 연기하든, 선택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몫이다.

 

그렇게 부조리한 세계로 이들을 불나방처럼 뛰어들게 만드는 건 음악과 무대가 주는 희열, 그리고 무대에 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다. MBN <미쓰백>은 어딘가 뒤틀린 아이돌 산업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고군분투해온 이들의 재도전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총 여덟 명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모두 여성 아이돌 그룹 출신이다. 가영, 나다, 레이나, 세라, 소연, 소율, 수빈, 유진은 총 100그룹, 약 200명 가운데 사전 미팅을 거쳐 최종 선발된 정예 멤버다.

 

활동 연차는 물론 현역 당시 인기나 인지도, 현재 처한 현실까지 각양각색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은 건 단 하나,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 마음이었다. H.O.T 출신 가수 문희준과의 결혼으로 가요계 첫 아이돌 부부의 탄생을 알린 소율(크레용팝)은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생긴 경력 단절이 만든 무대에 대한 목마름을 토로한다. 멤버들을 둘러싼 대형 스캔들로 국내 활동이 요원했던 소연(티아라)은 악플로 고통받은 긴 시간과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를 회고한다. 올해 스물넷으로 출연자 가운데 막내인 유진(디아크)은 전 아이돌이자 현 학생으로 음식 배달, PC방, 보컬 레슨까지 하루에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과 음악 생활을 병행하는 고달픈 하루를 영상에 그대로 담았다. 남다른 캐릭터와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 나다(와썹)는 ‘언프리티 랩스타 3’ 준우승을 통해 새롭게 도약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정산 문제로 불거진 소속사와의 긴 법정 투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과거를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오래 기다린 솔로 앨범의 부진으로 3년 가까이 본업인 춤과 노래가 아니라 게임에 중독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레이나(애프터스쿨), ‘수빈 컴퍼니’라는 1인 레이블을 설립해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는 수빈(달샤벳)의 노력도 가감 없이 그려졌다.

 

출연자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실린 첫 회가 방송된 이후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건 스텔라 가영과 나인뮤지스 세라의 사연이었다. 스텔라 활동 당시 파격적인 콘셉트로 주목받았던 이들의 사정 뒤에는 기획사의 강요와 거짓말이 있었고, 그 결과 가영은 아직도 노출이 심한 의상을 쉽게 입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개인 SNS로 부적절한 사진이나 스폰 제의를 받는 등 각종 성희롱 행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황장애로 인한 약물 부작용과 생활고로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고 갑작스레 책상에 엎드려 심호흡하며 “괜찮다, 괜찮다” 몇 번이고 되뇌는 세라의 모습은 많은 이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 역시 데뷔 초 수위 높은 노출과 의상을 강요받는 상황을 참을 수 없어 팀을 탈퇴한 전력이 있었다.

 

쉽사리 나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이들이, 다시 무대에 도전한다. ‘인생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혹자들은 의아해한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그렇게 고통받았는데도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제작진도 그러한 대중의 일차원적인 호기심에 일조했다. 프로그램 초반, 출연자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행히 백지영과 송은이라는 좋은 멘토들의 진심 어린 인도로 산 하나를 어렵게 넘고 나니, 이번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의 날 선 댓글이 문제였다. 사지 멀쩡한데 아르바이트를 하라거나 집에서 애나 잘 키우라거나, 심지어는 섹시 콘셉트가 소속사만의 의지였는지 양측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반응들이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무심코 던지는 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입견에 갇힌 내용이었다. 여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고, 사장님의 소유물이나 입간판 취급을 당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쇼 비즈니스계의 잔혹한 악습까지 더해지면, 어딘가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붙들고, 프로그램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한다. 우리에겐 그래야 할 명분이 있다. <미쓰백>은 그 모든 불합리와 몰상식을 온몸으로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용기 낸 이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려내는 모든 순간이,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를 전하기 때문이다. 세라가 약물 부작용으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찍혀 방송되자 백지영은 “방송 안 나갔으면 좋겠으면 제작진에게 얘기해”라며 당사자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소연은 “친하게 지내요, 언제든지”라며 동갑 친구 세라에게 손을 건넨다. 나다는 자유로운 복장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진 가영을 위해 과감하고 독특한 자신의 의상들을 직접 가져가 함께 입어보며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음악 오래 하고 싶어요, 디너쇼까지.” 수많은 가수가 수없이 한 말이지만 이들이 하면 다르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던 시절에서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를 기나긴 터널을 지나 비로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이들이기에 다르다. 밑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게 자신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이들이기에 다르다. 인생곡을 걸고 벌어진 첫 번째 미션의 우승자 유진의 ‘투명소녀’는 이런 가사로 끝난다. “두려움을 걷고 용기 내서 말해 / 슬픔아 이제는 Bye Bye.” 무대가 좋아, 노래가 하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 다시 눈부신 조명 안으로 몸을 던진 이들의 여정이 그리는 길은 실패든 성공이든 상관없이 분명 유의미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불행의 전시가 아닌 부활의 서막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제대로 ‘돌아온’ 이들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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